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 문학동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은 지 맘대로다. 드림팝의 몽환적인 사운드에 안 어울리게 가끔 간질 발작처럼 잘게 쪼개지는 기타가 등장하는가 하면, 익숙하고 팝스러운 멜로디가 나오다가 처참하게 붕괴하듯 음조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 밴드의 보컬이자 〈H마트에서 울다〉를 쓴 미셸 자우너의 성정이 딱 그 음악 같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널을 뛴다. 그러나 그 안에 숨은 고유한 감성, 한없이 순수한 감성은 정말이지 귀하다. 그런 그녀를 평생 견뎌내며 사랑한 엄마는, 아마도 유일무이했을 것이다. 지난해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뉴욕 타임스〉 등의 메이저 언론이 인터뷰까지 실으며 주목한 바 있는 〈H마트에서 울다〉는 자우너 가정의 시작부터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2014년 전후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국 사람이라면, 이 책의 클라이맥스에서 엉엉 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라면 서론에서만 세 번쯤 울게 될 것이다. 세상을 떠난 엄마와 자주 가던 한인 슈퍼마켓에서, 뻥튀기 봉지를 들고 자기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아시아인 아이의 모습을 본다면, 무너져 내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박세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 사이언스북스
심야에만 운영하는 그윽한 분위기의 카페를 취재한 적이 있다. 아이템 하나하나 낭만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메인 테이블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놓여 있었다. 사장은 말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거든요. 과학서지만 웬만한 시집보다 아름답잖아요.” 〈코스모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말.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겠다. 칼 세이건은 과학 상식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거나(소설인 〈콘택트〉를 제외하고), 뜬구름 잡는 낭만적 가설을 제시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불세출의 과학 저술가이자 행성 과학자였던 그는 그런 것들, 유사 과학, 미신, 음모론, 비과학적 표현을 누구보다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생전 마지막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도 그것들이 횡행하는 시대에 대한 우려를 담은 책이다. 그는 왜 우리가 유사 과학에 매료되는지, 그것이 과학과 어떻게 다른지, 어째서 과학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인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놀라운 건 그 결과물 역시 웬만한 시집보다 아름답다는 점이고 말이다.오성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 모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어느 남학생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15년의 시차를 오고 가며 다양한 인물의 눈으로 그려진다. 순간 기억력을 가진 무뚝뚝한 형사. 의붓딸에게 손을 대는 양아치, 사이비 종교에 현혹된 여인 등 일본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기시감을 느낄 법한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별개인 줄만 알았던 인물과 상황이 하나씩 맞물리며 속도감 있게 결말로 내달리는 구성 역시 익숙하다. 뻔한 내용 같은데도 페이지를 연신 넘길 수밖에 없는 건 영화를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와 탁월한 완급 조절 덕이다. 읽을 땐 흥미진진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면 빠르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여느 추리소설과 이 책이 결을 달리하는 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다. 저자는 ‘사실 범인은 얘야. 몰랐지?’라고 말하는 대신 같은 지붕 아래 수십 년을 함께 살았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 몰랐다는 결말을 보여주며 ‘가족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과 여운을 던진다. 발행 후 약 1년 만에 일본에서만 24만 부가 팔릴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박호준
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 윌북
우리는 흔히 노화가 곧 나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화는 다른 동물의 그것과 달리 동면에 의해 멈춘다거나, 번식 후에 급격히 진행된다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노화도 오직 시간에 따라 정속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메커니즘은 아니다.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데, 대표적인 게 운동이다. 한스 셀리에라는 내분비학자는 운동이 심장의 노화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적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이에 의문을 품는다. 그 자신이 80여 년을 달리면서 살아온 베테랑 러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연구 대상으로, 과학적 견지에서 운동이 오히려 노화를 늦출 수도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과연 운동은 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뛰는 사람〉은 그가 이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는 과정이다. 노학자가 자신의 주 연구 영역과 애정을 듬뿍 쏟은 취미를 오가며 치열하게 직조한 생물학 에세이들은 생물학이나 달리기, 어느 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썩 재미있게 읽힐 법하다.송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