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역사의 전설이 된 스피커들, 재해석과 복각과 오마주로 돌아오다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오디오 역사의 전설이 된 스피커들의 다소 뒤늦은, 하지만 이토록 깊고도 유연한 변주.
Tannoy Legacy Series
1926년 영국 런던에서 탄생한 탄노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스피커 제조사다. 하지만 장정일 시인이 “잠들기 전에 누워서 잠이 올 때까지 너를 생각한다”는 시 ‘탄노이 병’을 썼을 정도로 여태껏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 역사 때문이 아니다. ‘소리를 왜곡 없이 사실 그대로 구현한다’는 이들의 이상과 집념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탄노이는 최초의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를 만든 브랜드이기도 한데, 레거시 시리즈는 탄노이의 모니터 스피커 중에서도 손꼽히는 HPD 시리즈를 재해석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극도의 정확성을 추구한 탄노이랄까. HPD 시리즈가 인클로저의 용적을 줄이면서도 풍부한 저역을 추구한 라인인 만큼 여타 탄노이 라인업에 비해 오늘날의 청취 환경에도 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HPD(High Performance Dual-Concentric)라는 이름의 뜻이다. 탄노이의 심장과 같은 듀얼 콘센트릭(저음 유닛과 고음 유닛을 하나의 섀시에 결합한 드라이버)의 진일보를 담았는데, 레거시 시리즈로 진화하며 다시 한번 개선되었다. 탄노이라는 이름이나 역사, 묵직한 외관에서 오직 장중한 소리를 상상하고 감상한다면 곧 밝고 경쾌한 소리를 해석하는 능력에 놀라게 된다.
SIZE 아덴 91×60.2×36.2cm / 체비엇 86×44.8×26cm / 이튼 53.8×37.6×25cm
WEIGHT 아덴 41kg / 체비엇 29kg / 이튼 20kg
McIntosh ML1 MKII
‘매킨토시 앰프’는 오디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이콘이라 할 만한 물건이다. 카페나 바 안쪽 한편에서 은은히 빛을 발하는 ‘매킨토시 블루’ 색상 계기창을 발견하면, 그게 프리 앰프인지 파워 앰프인지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까지 저절로 자세를 고쳐 앉게 되곤 하니까. 놀라운 성능과 그것을 신뢰의 상징으로 확장시킨 역사, 독창적 디자인이 맞물려 빚은 유산인 셈이다. 다만 이런 신화에도 소소한 부작용이 있으니, 매킨토시가 오직 ‘앰프 메이커’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앰프가 주력이지만 매킨토시는 소스 기기부터 출력 기기까지 폭넓은 오디오 제품을 만들어왔다. 최근까지도 다양한 구성의 고성능 스피커를 개발해온 이들이 이번에 발표한 것은 자사 최초의 스피커 ML1의 후속작이다. 50년 만의 후속작이라니 뜬금없기는 하지만 콘셉트와 디자인의 연속성 측면에서든, 오늘날의 사용성에 맞게 개선한 세부 기술 측면에서든, ‘마크 투’라는 명칭이 손색없다. 오일 처리한 아메리칸 월넛 원목의 캐비닛 안에 우퍼 1개, 로 미드레인지 드라이버 2개, 어퍼 미드레인지 1개, 트위터 1개를 탑재해 최대 600W의 앰프 출력을 처리하며, 매킨토시 특허 기술인 LD/HP 자기회로 설계를 적용한 우퍼로 왜곡은 줄이면서 파워 처리 능력과 효율은 높였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ML1 유저들이 숱하게 주장했듯 매킨토시 앰프들과 비할 데 없는 궁합을 보여준다는 점이겠고 말이다.
SIZE 107×38.1×34cm
WEIGHT 28.1kg
PRICE 1980만원
Dynaudio Heritage Special
다인오디오 헤리티지 스페셜의 특이점은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제품을 꼽을 수 없다는 것이다. 크래프트, 컨투어1, 스페셜25 등 다인오디오의 황금기를 만든 전설적 북셸프 스피커들을 두루 오마주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인오디오로 말하자면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으레 포칼, B&W와 함께 ‘세계 3대 하이엔드 스피커 제조사’로 회자되는 브랜드. 이 덴마크 오디오 브랜드는 디자인, 역사성, 마케팅, 개성 등 어느 측면에서도 뾰족하게 돌출된 부분 없이 그저 ‘잘 만든다’는 사실 하나로 이런 명성을 얻어냈고, 자사의 ‘헤리티지’를 전면에 내건 모델에서 그 진면목을 총망라했다. 뉴 컨피던스 시리즈에서 따온 에소타 3 트위터, 에비던스 플래티넘의 18cm 미드 베이스 드라이버, 뉴 컨피던스와 뉴 컨투어I 시리즈의 비대칭 구조 노멕스 스파이더까지. 물론 다인오디오는 개개의 유닛보다 설계와 요소 간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브랜드고, 두뇌 역할을 하는 크로스오버를 완전 백지 상태에서 다시 설계했다. 소리에 대한 중론은 맑고 세련된 느낌의 사운드에 북셸프에서 낸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수준의 풍부한 저음을 낸다는 것. 뻔한 평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모델명을 쳐보면 거의 모든 오디오 애호가들이 해당 모델에 걸맞은 찬사를 바치려 미사 어구의 바다를 헤매는 진풍경을 마주치게 될 정도다.
SIZE 38.5×20.8×32cm
WEIGHT 11kg
PRICE 1160만원
JBL L100 Classic 75th
JBL 역시 탄노이만큼 오디오 역사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브랜드다. 그 전신인 랜싱 메뉴팩처링이 설립된 게 1927년, 탄노이가 탄생한 바로 다음 해니까. 하지만 검색창에 두 브랜드의 이름만 쳐봐도 알 수 있듯 JBL은 그 세월 동안 탄노이와는 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급변하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적응한 결과 모든 오디오파일이 선망하는 브랜드, 모니터 스피커의 기준으로 회자되었던 시절을 뒤로하고 어느새 내구성과 가성비가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L100 센추리는 그 변화의 틈에서 탄생한 전설적 모델이다. 1969년 하만 인터내셔널에 합병된 JBL은 대중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의 대표 격이었던 4310을 다듬어 가정용 스피커로 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JBL이 2018년 L100을 부활시키기로 한 이유 역시 오리지널이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이유와 동일하다. 기술력과 성능, 크기, 가격이 이룬 절묘한 균형. L100 클래식은 L100 센추리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청취 환경에 맞게 재해석한 모델이며, 창립 75주년을 맞아 내놓은 L100 클래식 75는 이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모델이다. 개선된 우퍼 서스펜션 구조부터 도금한 바이와이어링 단자, 그에 맞춰 바꾼 네트워크 회로, 티크 우드 마감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핵심과 균형은 깨트리지 않으면서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SIZE 82.4×39×36.2cm
WEIGHT 35.1kg
PRICE 전용 스탠드 포함 1200만원
Sonus Faber Stradivari G2
소너스 파베르는 라틴어로 ‘소리의 공방’이라는 뜻. 1980년 이탈리아 동부 비첸차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 오디오 브랜드는 ‘스피커도 하나의 악기’라는 독창적 이해를 기반으로 삼았고, 실제로 설립자 프랑코 세르블린은 유명 바이올린 생산지 크레모나에서 현악기 제작 기법을 수학한 후 이를 스피커 설계에 반영했다. 자사 스피커에 아마티, 과르네리, 세라피노, 스트라디바리 등 이탈리아의 전설적 악기 제조 장인들의 이름을 붙인 자신감 역시 이런 요소가 피상적 마케팅이 아님을 증명한다. 개중에서도 소너스 파베르가 자사 창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택한 것은 스트라디바리다. 이례적으로 넓적한 보디와 특유의 울림 구조를 가진 자사 최고 크기의 스피커. 재미있는 건 스트라디바리 G2가 이런 원전의 형태나 울림 구조, 소재를 제외한 모든 요소를 전면 재검토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바이올린 제작자에게서 따온 이름에 걸맞도록, 클래식한 느낌을 주면서도 지금껏 소너스 파베르가 이룬 모든 발전을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너스 파베르는 인클로저의 디자인이 유닛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한 브랜드이니만큼 외형만으로도 두 모델의 연속성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28mm 트위터, 150mm 미드레인지, 260mm 듀얼 우퍼를 채택했으며 공간의 크기에 맞춰 저역을 조절하는 다양한 기술을 탑재했다.
SIZE 137.4×71.5×42.8cm
WEIGHT 63kg
PRICE 7500만원
Graham Chartwell LS3/5A
영국 국영방송 BBC는 1950년대부터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꾸려 자사에서 사용할 모니터 스피커들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산 기반이 없었기에, 생산 과정은 민간 기업들에 위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BBC 모니터 스피커의 명가로 불리는 ‘로하스’, 즉 로저스, 하베스, 스펜더 같은 업체들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이들이 뜬금없이 해당 모델들을 리이슈해 시장에 내고 있는 건 ‘BBC 모니터 스피커’가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게 된 덕분이다. 명기로 회자되는 북쉘프 스피커 LS3/5A는 특히 단골손님. 이 부활의 특징은 ‘어떻게 재해석했는가’보다 ‘BBC의 원안을 얼마나 착실히 구현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해당 관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는 로하스 중 하나가 아니라 놀랍게도 이제 설립 10년 차가 된 브랜드 그라함이다. 오리지널 버전 스피커 개발에 참여했던 스펜서 휴즈(스펜더 창립자이기도 하다)의 아들이자 여러 LS 모니터 스피커 업체를 거친 전문가 데렉 휴즈가 핵심 멤버이기 때문이다. 50년의 세월 동안 슬쩍슬쩍 모델을 개량해온 여타 업체들과 달리 트위터를 감싼 투박한 펠트 패드나 벨크로식 그릴까지 철저하게 원안을 따랐으며, 소리도 마찬가지다.
SIZE 30.5×19×16.5cm
WEIGHT 5.3kg
PRICE 38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