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행은 이 곳? 비엔나의 낮과 밤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지금까지 당신이 봤던 비엔나, 그리고 보지 못했던 비엔나. 번쩍이는 클림트, 영롱한 모차르트, 서정적인 브람스, 그리고 그 이상의 것. 황홀하고 자유로운 예술과 젊음의 세계로 안내한다.
비엔나에 대한 막연한 상상. 찬란한 클림트와 모차르트의 도시. 아름다운 음악과 예술, 휘황한 궁전과 알프스의 청량한 물이 솟아오르는 분수 같은 것을 기대하며 도착한 비엔나는 고색창연한 채로 머물지 않은 젊은 도시였다. 다뉴브강변을 따라 총천연색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팔뚝을 훤히 드러낸 청년들은 거리에서 소시지와 케밥을 우적우적 씹으며 웃고 떠들었다. 학교엔 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걸려 있었으며, 횡단보도엔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다정히 손을 잡고 건너는 신호등이 반짝였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편리한 지하철엔 담배도 술도 안 되지만 반려견은 동반할 수 있다는 귀엽고 프렌들리한 사인이 붙어 있었다. 미술관에는 작품을 삐뚜름하게 걸어 지구의 평균기온이 매해 올라가고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었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전통적인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많았지만, 비건과 ‘팜투테이블’을 지향하며 건강한 식문화를 권장하는 새로운 식당도 넘쳐났다. 골목마다 빈티지 숍만큼이나 젊은 장인들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눈에 띄었다. 나이트라이프도 활력이 넘친다. 웅장한 궁전과 경건한 성당 사이 스피크이지바처럼 비밀스러운 입구를 들어서면, 시끌벅적한 에너지로 폭발하는 쿨한 펍들이 가득했다. 물론, 비엔나에 기대했던 고색창연함 역시 한 치도 부족하지 않았다. 클래식한 무드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시가지에 있는 호텔 모토를 추천한다. 가구와 소품, 패브릭, 벽지까지 파리 벨 에포크 시대를 연상케 하며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듯 기분 좋은 착각을 주는 공간이었다.
카페 뮤지엄에서는 전통적인 비엔나식 카페라테인 구름 같은 멜랑주 한 잔을 진한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 토르테와 고즈넉하게 즐길 수 있다. 비엔나는 도시 자체가 갤러리다. 클림트의 면면을 볼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과 건물 자체로 압도하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에곤 실레의 대표작이 걸린 레오폴트 미술관과 다빈치와 루벤스를 볼 수 있는 알베르티나 미술관, 피카소·샤갈·이브 클랭의 특별한 작품을 볼 수 있는 하이디 홀튼 컬렉션 등, 미술관과 갤러리가 즐비하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1870년대에 세워졌고 완벽한 음향으로 유명한 ‘황금홀’, 무지크페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빈 심포니의 공연까지, 세세한 가이드를 전한다.
HOTEL
비엔나의 벨 에포크, Hotel Motto.
로비로 들어온 순간, 1920년대 파리 벨 에포크 시대에 떨어진 줄 알았다. 묵직하게 열리는 우드 프레임의 손잡이, 아치형 구조와 청록색 술이 달린 진홍색 전등, 격자무늬 타일과 플라워 패턴의 패브릭, 층을 가리키는 다이얼이 달린 복고풍 엘리베이터까지 향수를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호텔 모토는 1665년 최초의 부동산 골든 크로스에서 시작해 요한 스트라우스가 아들 요제프를 낳은 집이며, 1872년 호텔 쿠머로 탈바꿈해 비엔나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살롱으로 자리 잡았다. 약 3세기 동안 증축되는 과정에서도 고딕과 비잔틴 양식의 요소가 남아 있어 그 자체로 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는 호텔이다.
거기에 ‘Arkan Zeytinoglu Architects’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가구와 소품들은 벨 에포크 무드와 미드센추리 무드를 적절히 섞어 빈티지하면서도 모던한 공간을 완성했다. 호텔 곳곳을 장식한 안드레아 페롤라의 경쾌한 그림과 마틴 파의 사진이 주는 즐거움도 놓치지 말 것.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1920년대풍 사랑스러운 유니폼과 상냥한 응대도 이 호텔이 제공하는 시간 여행의 묘미다.
▶ www.hotelmotto.at
FOOD & DRINK
팜투테이블, C.O.P
‘팜투테이블’을 지향하는 레스토랑, C.O.P는 ‘Collection of Produce’의 줄임말이다. 셰프 엘리하이 베를리너와 하야 몰초가 오픈한 이 레스토랑은 오스트리아 전역의 농부와 와인 생산자에게서 싱싱한 고품질의 계절 식재료를 직접 수급받아 고객들에게 바로 내는 선순환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본능적이고 정직한 요리를 지향하는 다이닝의 중심에는 직화로 조리하는 장작 오븐이 자리하고 있으며, 식사를 즐기는 고객들이 언제든 가져갈 수 있게 갓 따 온 레몬과 사과, 기름진 올리브 절임과 브라운 버터를 비치했다.
신선한 치즈와 고수와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애피타이저, 닭 간으로 만든 파테와 사워도우, 통째로 구워 스푼으로 골수를 떠먹는 소의 정강이뼈, 겉만 살짝 익혀 할라피뇨와 곁들여 먹는 송어, 거대한 배스를 통으로 튀겨낸 와일드한 요리를 추천한다. 눈앞에서 바로 불에 그을려 주는 크림브륄레도 별미다.
▶ www.copvienna.at
길에서의 근사한 한 끼, Alles Wurscht
가판대에서 소시지, 커리부어스트, 오징어튀김, 감자튀김을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테이크아웃 전문 식당. 작은 테이블이 있어 먹고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오픈할 무렵부터 비엔나 청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그야말로 핫한 길거리 음식. 오스트리아 대표 탄산음료 알름두들러와 함께 먹길 추천!
▶ alleswurscht.at
비엔니즈처럼, Naschmarkt
1820년대부터 이어진 전통 시장인 나슈마르크트에는 다양한 품종의 올리브와 각양각색 치즈,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가판대가 늘어서 있다. 시장 한편엔 맥주 한 잔과 함께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즐비하니 하루쯤은 나슈마르크트에서 비엔니즈가 된 기분으로 식사를 해결해보자. 사실, 오며 가며 상인들이 건네주는 올리브와 치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 www.wien.gv.at
ONE LAST DRINK BABY, Dachboden
비엔나의 밤,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면 다흐보덴으로 가자. 까르띠에 뮤지엄에 있는 ‘25hours’ 호텔의 최상층에 있는 펍으로, 입구에 깔린 ‘ONE LAST DRINK, BABY’라는 문구의 카펫이 애교스럽다.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웃고, 누구는 비엔나 시내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흡연을 만끽할 수 있는 바. ‘훅업’ 칵테일을 시킨다면, 귀여운 콘돔을 꽂아준다.
▶ www.dachbodenwien.at
ART
어디에도 없는 작품, 하이디 홀튼 컬렉션
비엔나에서 뜻밖의 그림을 마주했다. 클림트의 키스보다 샤갈의 키스가 나를 울렸다. 샤갈의 팬이었음에도 실제로 보지 못한 희귀한 작품, ‘샤갈의 연인들’을 하이디 홀튼 콜렉션에서 마주한 것. 푸르스름하게 질린 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은 남자에게 입을 맞추고 있다. 그 광경은 영혼끼리의 입맞춤처럼 하염없이 숭고하다.
파인 아트부터 응용 예술까지 망라하는 소장품들로 가득한 하이디 홀튼 컬렉션은 6월 5일 오픈할 두 번째 전시 〈RENDEZ-VOUS〉를 앞두고 있었다. 큐레이터와 전문 인력들은 작품을 설치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덕택에 아직 그림이 채 걸리기도 전의 귀한 순간을 감상했다.
홀튼의 수집품은 피카소·샤갈·마티스·호안 미로·이브 클랭까지, 야수파·큐비즘·표현주의까지 포괄하며 그 면면이 화려했는데,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KB)’로 널리 알려진 이브 클랭의 눈이 멀 듯한 새파란 작품들이 박스에서 꺼내져 설치될 때는 모두의 입에서 약속한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비엔나 국립 미술사 박물관과 벨베데레 궁전은 비엔나에서 꼭 들러야 할 미술관이다. 하지만 관광지 이상의 갤러리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잊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 www.hortencollection.com
클림트의 향연, 벨베데레 궁전
ⓒ YEJI LEE
대표작 ‘키스’, ‘유디트’ 외에도 수많은 클림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각종 매체에서 닳도록 봤다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환희는 강력하니, 그냥 넘어가지 말 것. 모네, 세잔, 고흐, 쇠라, 뭉크, 툴루즈-로트렉 등 클림트에게 영향을 준 화가들의 기획전도 진행 중이니 한자리에서 눈이 호사를 누릴 기회다. 무엇보다 벨베데레 궁전은 작품들만큼이나 정원이 아름다운 곳으로, 봄과 여름에 간다면 장미 정원과 분수 앞에서 광합성을 즐기도록 하자.
▶ www.belvedere.at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남들이 다 가는 덴 이유가 있다. 1858년 프란츠 요제프 1세 때 세워진 건축물로, 들어서는 입구의 홀부터 그 위용이 대단하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수 세기에 걸쳐 고대 이집트 및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 시대,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집해온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중앙 홀의 거대한 계단 기둥 사이사이 미술사의 중요 시대를 클림트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루벤스, 램브란트, 카라바조 등의 작품도 놓치지 말 것.
이곳에 가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궁전에서 커피 한 잔을 하는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쿠폴라 카페. 추천 메뉴는 에스프레소에 체리 브랜디를 넣은 카페 모차르트다.
▶ www.khm.at
MUSIC
황금의 홀, Musikverein
무지크페라인은 소위 황금홀이라 불리는 비엔나의 클래식 공연장이다. 1870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 의해 개장한 이래, 매해 비엔나 필하모닉이 새해 공연을 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관광객들은 주로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보곤 하지만, 클래식에 관심이 있다면 완벽한 음향을 자랑하는 무지크페라인에서 공연을 보는 경험을 놓치지 말자. 비엔나 필하모닉의 공연을 예약하는 건 몇 달 전부터 서둘러야 하지만 비엔나 심포니의 공연은 예약 난이도가 낮은 편. 에디터 역시 무지크페라인 공식 사이트에서 비엔나 심포니 공연을 예매해 관람했다. 공기 중에 잼을 얇게 펴 발라 귀에 감기는 듯한 음향에, 청중들의 매너도 완벽해 다시 한번 여기가 음악의 도시임을 실감했다. 이날 프로그램도 훌륭했는데, 쏟아져 내리는 베토벤 칸타타와 경건한 브람스 82번도 좋았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건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이었다. 강건하게 빛나는 금관악기 사이를 누비는 현의 섬세함, 번쩍이던 샹들리에와 황금의 홀, 근사하게 차려입은 백발의 신사 숙녀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앙코르 박수, 박수, 박수…. 비엔나에서는 낮에는 즐겁고 밤에는 멜랑콜리에 젖었다. 맡겨둔 외투를 찾아 밤거리로 나서자, 비로소 내가 비엔나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www.musikverein.at
SHOP
식물과 함께, CALIENNA
칼리엔나는 식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판매하는 숍이다. 그들은 도시 생활에서의 과소비와 환경 파괴, 스트레스를 지양하며 자연과 식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식물로 가득한 이 숍에서는 비건 음료와 비건 디저트를 즐길 수 있으며, 자연과 마음의 평화에 대한 각종 저널과 책도 구입할 수 있다.
▶ calienna.com
가장 새로운 클래식, SHEYN
이스라엘 건축가 니콜라스 골드와 마르쿠스 샤퍼가 3D 프린팅 기술로 가볍고 근사한 오브제를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 화병, 조명, 보울, 액세서리와 오너먼트까지 유려한 곡선과 각도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표면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정물처럼 우아하고 정적인 디자인이지만 손으로 한번 들어보면 그 가벼움에 깜짝 놀라게 된다. 쇼룸에서는 젊은 장인들이 3D 프린팅 기술로 작품을 만드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다. 에디터들에게 가장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켰던 숍.
▶ www.sheyn.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