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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두고 싶은 나만의 천국, 타즈매니아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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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행지를 고를 때마다 나만이 갖고 있는 나라별 선입견이 있다. 중국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구채구를 다녀온 후 중국을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우유니 소금사막을 다녀온 후 볼리비아란 나라가 대단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 와중에 호주란 나라는 몇 번 여행을 하며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종종 인종차별을 겪었고, ‘허걱’ 하게 만드는 놀라운 물가에 고개를 내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호주 여행은 달랐다. ‘타즈매니아(Tasmania)’ 라고 불리는 호주 속의 또 다른 호주를 다녀오면서 나는 이제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호주를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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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아직까지는 미지의 땅이라 불리어도 좋을 타즈매니아에 지인이 2명이나 살고 있는 건 큰 행운이었다. 보통 여행지를 크게 지인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두 가지로 나누곤 한다. 그리고 지극히 이기적이게도 지인이 있는 여행지는 하릴없이 게으른 여행이 된다. 현지 정보에 대해 책 한 줄 제대로 읽지 않게 되고, 인터넷 서치 한번 진득하니 해보지 않은 채 그 나라 땅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인천에서 시드니까지 11시간의 밤샘 비행기를 견딘 후 바로 국내선을 갈아타러 갔다. 이번 여행의 액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악명 높은 호주 국내선 ‘젯스타’의 반란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그날 아침 급작스러운 엔진 이상으로 비행기 기종이 작아지면서 시드니를 출발해 호바트로 가는 항공기 좌석 서른 석이 날아가게 되었고, 불행하게도 나의 이름도 그 리스트에 있었다. 인도인 매니저와 한창 실랑이를 벌인 후 다시 쓸 일이라곤 절대 없을 것 같은 A$200의 젯스타 바우처를 울며 겨자 먹기로 거머쥔 채 3시간 30분 뒤 떠나는 비행기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다. 도착할 여행지의 공항에서 누군가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도 잠시. 괜한 미안함과 아쉬움, 공항에서 벌인 항공사와의 싸움 때문에 피곤해진 나는 그날의 여행을 접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여행과 인생은 같다. 예측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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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타즈매니아의 중심 도시, 호바트. 세상에나! 마치 나를 곧 잡아먹겠다는 듯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거대한 구름 떼를 보았다. 드넓은 하늘에 한가득 낮게 깔린 뭉게구름이 어렵게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를 환영해주는 듯했다. 누군가 붓으로 그려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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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강을 건너 숙소에 도착하니 순식간에 내 코로 들어오던 향긋한 냄새. 거짓말 보태지 않고 타즈매니아를 여행하는 내내 백여 종쯤 되는 다양한 꽃을 보았다고 하면 믿어질까? 그만큼 어딜 가도 예쁜 꽃들이 펼쳐져 있어서 보는 내내 행복했다.

밤이 되자,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즈매니아에는 유난히 별이 많이 보인다는 이야기야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매일 밤 별을 보고 감탄할 때마다 현지인들은 이야기했다.

“이 정도는 많이 안 뜬 건데?”

별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의 밤하늘에 길든 내게 감탄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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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거리를 지나며 마주쳤던 동물의 세계 또한 놀라웠다. 동물과 친하진 않은 탓에 그 이름을 다 알진 못했지만, 왈라비, 토끼, 오리, 거위, 새 들이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마치 살아있는 동물원을 여행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매일 내 귓가를 울리던 다양한 새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녹음된 방송을 틀어둔 게 아닌가 싶었고, 어느 날엔가는 뱀까지 등장해 혼비백산한 적도 있다.

새소리를 들으며 (뱀을 피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여행지….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소득이자 선물이었다.

라면 봉지보다 큰 전복을 먹고, 이 지역에서만 난다는 흑우로 스테이크를 해 먹으며 야외 공원에서 바비큐를 즐기고, 그 어디에서도 막히지 않은 길을 달리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어느 풍경에서는 스위스가, 어느 관광지에서는 노르웨이가, 어느 길가를 달리다 보면 뉴질랜드가 떠올라 지금 내 몸이 어디 있는지조차 순간 헷갈릴 정도였다. 타즈매니아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유명한 여행지를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저 보이는 모든 것과 느껴지는 하나하나가 귀한 여행의 소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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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행을 하다 보니 그 여행지를 다시 오고 싶은지 아닌지를 쉽게 결정하는 편이다. 타즈매니아는 도착한 첫날 이미 느꼈다. 아, 나는 곧 이곳과 사랑에 빠져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이곳을 그리워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타즈매니아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맡았던 꽃향기, 새소리, 별들이 그리워 지금도 매일 사진을 뒤적인다. 글과 사진, 동영상으론 표현되지 않는 그곳의 매력을 과연 내가 얼마나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년 휴가도 살그머니 꿈꿔본다. 부디 그곳에 다시 갈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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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루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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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 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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